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대만 타이페이 자유여행

비가 와도 즐거운 타이페이


환잉꽝린(歡迎光临) 대만의 첫인상
대만 사람들은 무척 친절했고,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대체적인 성향인지,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든 기분 좋았다. 길을 물으면 물어본 거 이상의 정보를 알려줬다.

롱산쓰(龍山寺, 용산사)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금요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용산사에 도착했다. 용산사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있어 찾아가기 쉽다. 향 냄새가 가득했고, 사람도 많았다. 손에 자그마한 책자를 들고 다 같이 한소리를 내고 있었다. 불경을 외는듯했다. 비록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어느새 따라하게 된다. 그들에게 신앙은 생활의 일부 같았다. 한 아저씨는 비를 맞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손에 향 뭉치를 쥐고 하늘 향해 높이 들고서 입으로는 중얼중얼, 무슨 소원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비는 것인지 궁금했다.

용캉제(永康街, 영강가)

용캉제에는 맛집과 예쁜 커피숍이 많다. 골목마다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겨서 뭘 먹을지 고민했다. 언제 또 와보겠냐며 먹고 싶은 건 다 먹기로 했다. 전투적인 태세로 50년 전통의 우육면 가게에서 우육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통통한 고기가 몇 덩이씩 얹어져 있는데도 한국 돈 7000원 정도다. 홍샤오니우로우미엔(红烧牛肉面)은 보기에는 맵고 약간 느끼하게 생겼으나, 맵지 않고 조금 짰다. 싸서 좋다. 꼬리잡기를 방불케 하는 긴 줄의 범인은 총좌빙(葱抓饼) 가게였다. 총좌빙은 밀전병에 계란, 햄, 치즈, 파 등 원하는 토핑을 고를 수 있다. 삼십분을 기다려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토핑과 소스가 어우러진 맛이다. 비가 와서 그런지 더 맛있었다. 기름 냄새와 팬에 닿는 칙~소리. 길거리 음식이지만 이정도면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다음에 또 오기로 다짐하고, 근처에 있는 유명한 망고빙수 가게에 들어가 제일 잘 팔리는 메뉴를 시켰다. 한 입, 두 입, 추워졌다. 해가 쨍쨍 쬐는 여름이었다면 더없이 좋았을 텐데, 비라니, 아쉽다. 추워도 먹을 건 먹어야지, 꿋꿋하게 다 먹었다.

101빌딩

매표소 점원: "날씨가 안 좋아서 야외전망대는 문을 닫았고, 시야가 좋지 않아 야경도 잘 안 보입니다. 그래도 가실 건가요?” 이렇게 솔직한 점원이 있다니! 올라가도 잘 안 보인다는 말에 잠깐 고민했지만 그래도 왔으니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표를 샀다. 역시 말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다.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주는데 보여야 설명을 듣지.... 창문에 딱 붙어봐도 그저 희뿌연 안개와 창문에 붙은 빗물만 있었다. 101빌딩 입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마음을 달랬다. 내일은 맑기를 바라면서 씁쓸하게 내려왔다.

국부기념관

잠시 들렀다. 국부기념관은 중국 근대민주혁명의 선구자인 쑨원(손문)의 기념관이다. 그런데 기념관 앞에서 춤추는 학생들, 사교댄스 추는 아저씨 아줌마, 기 수련하는 사람, 책 읽는 사람을 봤다. 남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었다. 만약 한국이라면 현충사 앞에서 이럴 수 있을까? 마치 오디션 순서 기다리며 연습하는 사람들 같았다. 한국에서 못하는 거니까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로는 이상했다. 다른 장소도 많을 텐데 왜 하필 기념관 앞에서 이럴까?

칭런치아오(情人橋, 정인교), 위런마토우(漁人馬頭, 어인마두)

비바람이 몰아치는 을씨년스러웠다. 일정이 뒤틀렸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촬영지는 제하고, 칭런치아오와 위런마토우만 갔다. 칭런치아오를 건너는 중에, 우산이 바람에 뒤집히기를 여러번. 가냘픈 우산 손잡이를 꼭 쥐고는 그래도 사진을 남겨야 한다며 산발머리로 사진을 찍었다. 비바람에 눈이 셔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닦을 겨를도 없이 비바람에 떠밀려 쫓겨나듯 다리에서 내려왔다. 맑은 하늘 아래 정적인 부둣가, 알콩달콩 데이트 하는 커플들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커플은 고사하고 여행객도 별로 없었다. 피신하듯 근처 커피숍에 들어갔다. 부둣가 마을을 품은 통유리로 된 창가자리에 앉았다. 정박한 배 몇 척, 바람에 휘청대는 나뭇가지, 창문을 스치고 간 빗방울 자국.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제법 운치 있었다. ‘재수 없게 비 온다’고 생각했는데, 이 것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조각, 예류(野柳)

대만 여행의 필수코스! 유네스코에 등록된 예류 풍경구에 갔다. 중국 여행객으로 가득했다. 대만사람과 중국사람이 삿대질하며 싸우던데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화난 것은 분명했다. 오가는 고성을 뒤로하고 내 갈 길 갔다. 장시간의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돌 조각들, 표고버섯 같았다. 여왕머리 바위가 제일 유명했다. 믿는 대로 보인다고 정말 여왕머리 같았다. 자연의 위대한 힘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진과스(金瓜石)

진과스는 타이베이 근교에 있는 폐광촌으로 20세기 전반에는 금 채굴이 활발했었다. 일본 식민지 때 만든 것이라 모두 일본식 건축이다. 사진으로 본다면 일본인지 대만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일본풍이 강했다. 난 그저 신구 할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던 광부도시락이 먹고 싶어서 갔다. 220kg 순도 99.9%의 금덩이도 만져볼 겸. 광부도시락은 정말 맛있었고, 금덩이는 너무 커서 실감 나지 않았다. 온 김에 갱도체험도 했다. 안전모를 쓰고 광부 체험을 했는데, 컴컴하고 습했다.

아름다운 홍등마을 지우펀(九份)

진과스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지우펀이 있다. 영화 <비정성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드라마 <온에어>의 촬영지 혹은 모티브가 된 곳이다. 비가 와서 느낌은 좋았는데 우산 쓰고 사람 많은 골목을 비집고 다니니 금방 지쳤다. 골목에는 음식도 팔고 물건도 판다. 땅콩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밀전병에 땅콩가루를 뿌리고 아이스크림 두 덩이를 얹고 식성에 따라 고수를 넣고 돌돌 말아준다. 여태껏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었다. 고수를 넣고 안 넣고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다. 여행책자에 실린 아메이차관에서 차 한 잔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었는데, 이들은 풍경을 판다. 우롱차 일인당 300씩 내란다. 터무니없어서 배경 삼아 사진만 찍었다.

중정기념당, 교대식

여행의 마지막 날 드디어 해를 봤다. 중정기념당은 초대 총통 장개석의 기념관으로 장개석의 사진, 업적, 옷, 자동차 등이 전시되어있다. 매시간 하는 교대식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인형처럼 서 있던 위병들이 정시가 되자 절도 있는 동작을 보여줬다. 총을 돌리고 바꾸고, 각 동작에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다. 보는 내내 틀릴까봐 내가 다 조마조마.


내가 여행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3가지는 날씨, 음식, 동행자다. 비가 내려 일정이 바뀌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좀 더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계획대로 진행했으면 발에 불나게 돌아다녔을텐데, 비 덕에 시간에 쫒기지 않고 둘러볼 수 있었다. 곱창국수, 우육면, 총좌빙, 딤섬, 소룡포, 훈툰, 지파이, 망고빙수, 광부도시락, 쩐쭈나이차, 망고맥주.. 많이도 먹었다. 대만 음식은 대체로 한국인 입맛에 맞는 것 같다.


---
Taipei, Taiwan
MAR.2014 (3박 4일)

댓글